내성천, 천성산 여행 *archive

예전부터 맘에 품던 취재를 지난주에서야 단행했다. 스트레이트 부서에서 나오니, 다시 이런 종류의 기사를 쓸 수 있구나. 딱 부러지는 결론을 원하는 신문 문법 안에 있는 한, 우리가 가진 진실의 체는 너무 성글다. 
1박2일의 첫날. 영주에 내려가서 지율 스님을 뵈었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접때처럼 스님을 따라 내성천을 걸었다. 불과 일 년 만에 내성천은 확연히 나빠져 있었다. 가뭄 탓도 있겠으나, 물은 흐르다 못해 여기저기 고여 녹조가 피었고, 뾰족하고 투박한 석천(시골 사람이 그렇게 부르더라)이 곱던 모래밭에 박혀 있었다. 
스님뿐만 아니라 마을 아저씨도 '강의 동학'을 안다. 
영주댐 때문에 모래가 막혀서 그려. 모래가 흘러내려야 하는데, 영주댐이 막아 버렸거든. 그러니께 저렇게 물빛이 탁한 거재. 그래서 영주시한테 말해서 수질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더고 하드만. 수치는 그렇게 나왔어도, 물빛이 저리 탁한데, 믿을 수 있나? 믿을 수 없재.
경상도 사투리로 들었는데, 옮겨 적기는 전라도 사투리다. 어쨌든 아저씨가 사는 마을은 내성천이 바로 옆에 흐르는 용혈1리. 거기 사람들은 그냥 미림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모든 강은 지하수와 관계된다. 강은 모래밭을 통해 물을 머금고 지하수와 유통한다. 평생 강에 산 아저씨는 그걸 안다. 그 모래가 없어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강물이 구정물이 됐을 때, 자신이 길어 마시는 지하수도 구정물이 된다는 것을 안다.
Copyright 강재훈
무섬마을 모래밭에 앉아 잠깐 지율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꽤 운치가 있는 한옥마을로, 예천 구룡포 못지않은 강모래를 갖고 있다. 지난해 왔을 때, 이곳도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다.  
지율 스님은 내성천을 걸으면서 사기를 주워 모았다. 몇 십 년 전 조잡한 그릇도 있지만, 조선 백자도 꽤 많이 주웠다고 했다. 그걸 한데 모아서 전시회도 열었다. 지율 스님은 비구니여서 그런지, 일반인 이상의 예술 감각을 가지셨다. 직접 홈페이지도 편집하시는데, 시각디자인과 출신 웹디자이너 못지않다. 
천성산에 내려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스님 댁에 들러 모시고 가려는데, 아침을 차려주셨다. 절밥처럼 검소했다. 봉지 커피를 하나 녹여 마시고 자동차를 타고 천성산으로 내려갔다. 비가 왔다. 스님은 천성산에서 존재론적 숙명을 만났고 낙동강을 거쳐서 내성천까지 왔다. 보수신문의 '천성산 도롱뇽 천국' 공격 속에서 그가 처했던 암흑은, 도저히 존재론적으로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스님은 결기를 하고 신문기자와 함께 천성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위대한 것들의 문턱에 이른 나는, 허나 무엇에나 심드렁해지는 습관 때문에 자꾸 졸음이 왔다. 
천성산 안개는 움직이거나 몰려다니지 않고 마치 견고한 물질처럼 우리 주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임도를 헐떡이며 올라가는 사륜차도 가로막는 안개 때문에 빨리 나아가질 못했다. 겨우 천성산 밀밭늪에 도착했다. 축축히 젖은 대지의 냄새,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불가지론에 휩싸인 지하세계 그 위로 천성산을 덮은 안개. 침투할 수 있으되, 이내 뭉개져 버리고, 방향 감각을 앗아가며 역습하는 안개. 
자본주의가 기원한 이래 자연은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차고 헐떡이는 것처럼 길들여지다가 파괴되었다. 천상산의 늪은 헐떡이는 대신 시름시름 앓는 초식동물 같았다.
우리는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데만 익숙해 있었거든. 그러다가 거기서 괴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거야.(암흑의 핵심) 
그 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진리의 세계를 감싸고 있는 옷자락에 매달려 날리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난 그저 옷자락에 매달려 좌우로 하늘거릴 뿐이다. 어쩌면 세상에 흥미를 잃은 내 무열정 때문이기도 하고 진리의 세계 그 자체가 지니는 불가지론 때문이기도 하다. 그날 저녁 천성산을 뒤로 하고, 나는 무덤같은 도시로 돌아왔다. 지금도 스님은 다시 내성천을 걷고 또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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