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걸으라고 있는 것이다 seoul


2년 전 교통사고가 나서, 집에서 요양할 즈음, 거의 매일 집에서 어린이대공원까지 걸었다가 왔다. 매일 북극곰들에게 인사하고 오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 적,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읽었는데, 블로그에 쓰다가 말고 임시저장해 둔 게 있다. 

직립보행하면서 인간은 손과 얼굴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손과 얼굴의 기능을 확장시키면서 문명은 진보했다. 기술의 발전, 복잡다단한 커뮤니케이션, 다양한 시각화 등은 몸에 안정적인 자세-다른 기는 포유류-를 포기하고 우리가 얻은 것들이다.

내가 내 육체에서 하루 이용하는 것들은 신경기계들이다. 걔 중에서 특히 시각이 혹사당한다. 시각을 통해 90%의 이상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나의 생산물은 육체에 기대지 않고 있다. 특히 다리는 자동차를 보조하는 기능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가끔씩 통증을 유발하는 골치덩어리일 뿐이다. 

난 산책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산책. 하지만 그나마도 곧잘 본말은 전도되고 만다. 어느 순간 나는 걷기 위해 걷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걷고 있었다. 다시 나의 다리는 훌륭한 시각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리가 보조적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더 많은 시각적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이를 포획하는 도구들을 배낭에 넣기 시작했다. 나의 척추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다리는 알아주지 않는 고노에 들어갔다. 

발에는 뿌리가 없다. 다리는 걸으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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