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윌리 '케이코'의 위대한 항해 whale

*출처:위키피디아 코먼스

영화 <프리윌리>. 아마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이 영화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소년과 범고래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3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범고래 케이코다. 고래를 불법으로 잡으려는 밀렵꾼들과 소년과 고래의 저항을 그렸는데,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케이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 케이코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방큰돌고래 기사를 준비하면서 케이코의 이야기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모두들 <프리윌리>는 한번씩 들어봤지만, 케이코가 사람들의 폭발적인 성원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간 드라마틱한 삶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수백만명의 기금 참여로 '케이코 재단'이 생겼고, 이 재단은 전세계 돌고래 야생방사 운동의 상징처럼 돼 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케이코 프로젝트'에 관여한 두 과학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길게 써서 보내주었다. 기사는 두 과학자의 내용과 기존 자료를 덧붙여 구성했다. 

안녕 케이코

1998년 9월9일 미국 오리건주 뉴포트의 오리건 코스트 아쿠아리움 앞. 수백명이 범고래 ‘케이코’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몰려들었다. 공항에는 미국 공군이 지원한 C-17 수송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케이코가 고향인 아이슬란드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수컷인 케이코는 두 살 때 1977년 아이슬란드 바다에서 잡혀 캐나다와 멕시코의 수족관을 전전했다. 하지만 1995년 영화 <프리윌리>에 캐스팅돼 멕시코 수족관의 열악한 시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야생방사 운동이 벌어졌다.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성금을 보내는 등 이내 78억원(700만달러)이 쌓였다. 결국 멕시코의 수족관은 손을 들었고 케이코는 오리건 아쿠아리움에 있다가 이날 최종 방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케이코가 아이슬란드 남부의 섬 베스트만 제도에 도착해 야생방사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출처 <Keiko's story: A Killer Whale goes Home>


7시간 비행 끝에 케이코는 아이슬란드 남부의 섬 베스트만 제도(Vestmannaeyjar)에 도착했다. 이미 바다엔 길이 76m, 너비 30m의 야생방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생방사장은 길이 76미터, 너비 30미터, 깊이 7.3미터의 길이로 설치됐다. 우리나라 바다의 가두리 양식장을 연상하면 되는데, 케이코는 이 안을 헤엄치면서 야생적응 훈련을 받을 터였다. 수족관 돌고래의 야생적응은 첫째 죽은 생선을 산 생선으로 교체해 먹이고(산 생선을 잡아 먹는 방법을 익힌다), 둘째, 점진적으로 인간과의 접촉을 줄여 홀로 설 수 있게 하고(수족관 돌고래는 사람만 보면 쫓아와 먹이를 달라는 행동을 한다), 셋째, 차가운 바다 수온에 장기적으로 적응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케이코는 갓 두 살 때 야생에서 잡혀 20년 가까이 수족관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주 긴 야생적응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코는 야생방사장을 중심으로 야생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2002년 케이코 프로젝트를 넘겨받았을 때, 케이코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방사작업에 참여한 이 단체 수석과학자인 미국의 나오미 로즈 박사가 말했다. “케이코는 아침에 방사장을 나가 야생 범고래 무리와 어울리고 저녁이 돼서야 돌아왔어요. 7월 한달은 거의 매일 그랬어요.”

2002년 8월5일 케이코는 다른 고래들을 따라 동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케이코의 등에는 위성위치추적장치(GPS)가 붙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조마조마하며 케이코의 도전을 관찰했다. 이 작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뉴질랜드 과학자 폴 스퐁 박사가 말했다. “케이코는 북대서양을 향해 가고 있었어요. 아침마다 연구자들은 케이코의 위치를 확인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어요.”

*케이코의 항해도를 나타낸 지도. 8월5일 아이슬란드 남부를 거쳐 그달 말까지 북대서양을 횡단했다. 각 지점은 GPS에 찍힌 케이코의 여정이다. 갓 두 살 때부터 수족관에 갇힌 고래치고는 놀라운 기록이다. 'From captiviity to the wild and back; An Attempt to release Keiko the killer whale', <해양포유류과학> 2009년호.


*케이코에 달린 위치추적기. 'From captiviity to the wild and back; An Attempt to release Keiko the killer whale', <해양포유류과학> 2009년호.

케이코는 1000㎞를 헤엄쳐 8월31일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케이코가 따르던 범고래 무리와는 헤어진 것 같았다. “체중도 잃지 않고 건강했어요. 성공적으로 먹이 사냥을 했다는 거죠.”(나오미 로즈)

야생적응 훈련팀도 노르웨이에 급파됐다. 하지만 케이코는 이곳에서 야생방사장 없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구경 인파가 몰려 관광지화되는 바람에 그동안 사람 접촉을 차단한 게 헛수고가 되기도 했다. 1년 넘게 피오르 바다를 헤엄치던 케이코는 2003년 12월 갑자기 먹기를 중단하더니 무기력증에 빠졌다. 얼마 안 돼 케이코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케이코는 힘든 삶을 살았어요. 돌고래로서는 힘든 비행기를 네 번이나 탔고요. 하지만 변화에 도전하면서 26살까지 살았어요. 그 정도면 야생 범고래의 평균 수명이지만 수족관 개체로선 오래 산 거예요.”(나오미 로즈)

*노르웨이에 도착한 케이코. 8월30일에 찍은 사진이다. 과학자들은 케이코가 훨씬 건강하고 활달해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 휴메인소사이어티 제공.

최종적으로 야생 무리에 섞이지 못했기 때문에 케이코의 도전은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케이코는 아이슬란드 범고래 무리와 간혹 어울렸지만, 범고래들이 케이코를 끼워주진 않았다. 로즈 박사는 케이코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시각에 반대한다. “1993년 멕시코 수족관에서 케이코를 봤을 때 매우 아팠고 무기력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의 케이코는 강건하고 활동적이었어요. 케이코가 야생에서 5년을 살았어요. 우리는 만족합니다.”

케이코는 자신이 잡혀 온 위치에 방사됐지만 과거의 무리나 가족을 찾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퐁 박사는 이 지점에 대해 특히 아쉬워했다. “케이코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달성하지 못한 지점이죠. 케이코가 가족과 재회했다면 야생 무리에 합류해 완전히 적응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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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까먹을려고 하는 블로그 : 케이코를 보러 가다 2012-03-04 22:39:24 #

    ... 야생방사 운동이 벌어져, 1998년 고향이 아이슬란드 앞바다로 돌아왔다. 케이코가 두 살 때 잡혔던 곳이다. 프리윌리 케이코 이야기는 다음을 참고. 케이코의 위대한 항해 런던 게트윅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익스프레스를 타고 케플라빅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쯤. 6시 배는 타기 틀렸고, 레이캬비크에 들어가서 여 ... more

덧글

  • net진보 2012/03/04 21:14 # 답글

    비슷한 실제사례가 있었군요....뭐 영화화 된 후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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