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뛰어든 암소, 바다에 뛰어든 멧돼지 whale


1998년 여름의 어느 날, 미국 미주리 주 북서부의 스미스빌 호숫가 근처의 파라다이스 로커미트의 도축장. 암소 한 마리가 도축장을 탈출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암소는 몇 킬로미터를 도망갔다. 이 소는 보통 소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길을 건너고 울타리를 짓밟고 농부들을 피했다. 그리하여 스미스빌 호숫가에 다다르자, 물에 시험 삼아 한 번 들어가 보거나 두 번 생각하거나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소는 어디든 좋으니 하여튼 안전한 곳으로 헤엄쳐 가기로 했다. 그것이 암소가 치른 '철인3종 경기'의 두 번째 구간인 셈이었다. 

결국 용맹한 암소는 스미스빌 호수 건너편에서 잡혔다. 짧은 자유(를 만끽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는 끝나고 아마도 암소는 도축장에서 예정된 최후를 맞았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생각났다. 유난히 올해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뛰어든 멧돼지들이 많았던 것이다. 2011년 10월 강원 양양에서, 11월에 울산에서 두 번, 그렇게 세 번이나 있었다. 멧돼지나 소 등 네 다리 달린 포유류들은 평소에 헤엄을 치진 않지만 선천적으로 수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다. 하지만 이 멧돼지들은 스스로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이 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산에 헤엄칠 만한 강이나 있었겠는가?) 특히 울산에서는 엽사에 쫓긴 멧돼지가 정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이들 또한 스미스빌의 암소처럼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책은 용맹한 암소에 대한 한 주민의 반응을 실었는데, 참으로 본질에 닿는 듯한 어구이다. 그 주민이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탈출을 응원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돼지가 탈출에 성공해서 숲에 정착해 자유로운 야생 돼지 군락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바로 여기서 마들렌의 냄새처럼, 당신, 사라진 옛 감정이 다시 소르르 피어나고 있진 않는가? 그렇다. 우리도 이렇게 응원한 적이 있다. 작년 겨울이었나? 서울대공원을 탈출한 말레이곰 꼬마. 청계산을 헤매던 꼬마가 그냥 청계산에서 터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한 적이 있다. 엽총을 들고 산을 누비던 인간들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며 10년 뒤 청계산에서 아니면 관악산에서 '짠'하고 나타줬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안 될 일임은 알지만 말이다.

우리에겐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있다. 동물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반대로 동등한 생명체의 하나로 그들을 동정하는 마음. 두 욕망은 교차하고 충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을 통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 그리고 동물원의 판타지 메커니즘을 통해서 후자의 욕망은 은폐되기 일쑤다. 불판에 오른 삼겹살을 보면 청계산을 떠돌던 멧돼지를 생각하진 않으니까, 돌고래 쇼에서 박수 갈채를 받는 돌고래를 보며 그들이 원래 바다에서 헤엄쳤다는 진실을 떠올리진 않으니까.  





덧글

  • 네샤마 2012/01/03 20:17 # 답글

    현실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인간들이 사는 데에 동물들이 저렇게 계속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단백질로 고기를 만드는 등의 기술이 발전해서
    동물도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언젠가는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좋은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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