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1~1904년 남극 탐험대로 참가한 에드어드 윌슨(Edward A. Wilson )은1907년 보고서에서 남극 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포경은 고래 떼의 새끼를죽이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렇게 해야 어미 고래를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가 작살에 꽂혀 쓰러지면, 어미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래의 모성애는 강하다. 근대 포경은 이런 강한 모성애를 이용했다. 포경선원들에게도 새끼 고래는 아프리카의 아기 코끼리처럼 사냥하기 쉬웠다. 작살을 던지면 느리고 둔한 새끼는 맞기 일쑤였다. 어미 고래는 새끼 고래를 떠나지 못했다. 어쩔 줄 모르는 어미 고래에게 두 번째 작살이 향했다. 바다는 붉은 피로 물들곤 했다.
근대 포경의 선지자들인 바스크족은 16세기 중반부터 이런 고래의 '선한 습성'을 십분 활용했다.이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연안에 나가 작살을 던지는 방식으로 긴수염고래를 잡았는데, 이때 이들에게 널리 쓰인 포경법이 ‘새끼부터 죽이기’였다. 이들은 긴수염고래 무리 중에서 가장 먼저 힘없는 새끼에게 작살을 던졌다. 작살에 맞은 새끼는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모성애가 강한 어미는 힘들어하는 새끼를 보살피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때 선원은 최종 목표물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졌다. 포경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오면,고래 새끼에 작살을 명중시킨 선원에게 공이 돌아갔다. 이 선원은 고래 노획물의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갔다.(Oldfield1988)
근대 이후 포경 문학을 살펴보면, 사냥이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는 ‘양육 무리’에 집중되고, 어미가 몸을 바쳐 새끼를 보호하는 사건이 곧잘 기록돼 있다. 기록을 종합한 한 연구에 의하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북극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참고래 등 네 종이다.(Oldfield1988)
하지만 바다 위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새끼 고래와 자손 살육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어미 고래의 눈물을 포경선원들도 편치않게 보았던 듯 하다. 새끼를 해친 인간에게 복수하는 귀신고래의 이야기는 자주 포경선원들의 귀에 오르곤 했다. 새끼가 작살에 맞으면 귀신고래가 달려들어 포경보트가 뒤집히고 선원들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가반 밑에서 선원들은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귀신고래는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로 불렸다. 성난 고래에 뒤집히는 포경보트를 그린 그림은 수없이 많다. 이런 주제는 18세기 해양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사진도 노아 포토라이브러리에서 찾은 것인데, 포경 탐험가인 W. Scoresby의 항해에 수행한 화가가 그린 것이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고래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했다. 암컷 수염고래의 몸집은 수컷보다 크다. 대부분 수염고래는 먼 거리를 회유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몸 속 에너지의 저장소는 피부 아래에 있는 지방층인데, 암컷의 지방층은 수컷보다훨씬 두껍다. 새끼를 밴 고래의 경우 지방층이 더욱 두꺼워진다. 포경선원들은 이런 새끼 밴 고래를 환영했다. 지방층이 많아 고래기름을 더 많이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젖 물리기를 막 뗀 암컷 고래는 지방층이 얇기 때문에 선원들이 싫어했다.




덧글
PS : 근데 이건 과학이라기 보다는 인문이나 역사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