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물원, 돌고래 쇼 whale

 

겨울에 가장 을씨년스러운 곳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동물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겨울의 동물원은 황량하다. 속박된 동물들은 그들의 자유를 속박한 인간들이 사라져서, 역설적으로 동물원의 동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옅어져서, 외롭다.

원래 이날은 을씨년스럽지 않았다. 온도계는 영상 5도를 가리켰고, 서울의 오후는 일찍 찾아온 봄날 같았다. 사실, 우리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같은 기상학적 사건을 2010년 1월에 보내지 않았는가. 그래서 영상 5도도 따뜻했다. 그런데 서울동물원에 내리자마자, '2010년 빙하기'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살얼음이 낀 냉수가 옷속으로 스미듯이, 으슬으슬 추웠다. 금 간 벽화의 사슴도 마냥 추워 보였다. 겨울에 가장 추운 곳은, 동물원이다.


3년 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갔을 때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에서 '매기'라는 코끼리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 출신의 코끼리가 알래스카에 살아선 안 된다며, 동물보호단체는 이 불쌍한 동물을 따뜻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몇 년의 논란 끝에, 결국 앵커리지 동물원은 매기를 미국 본토의 따뜻한 곳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기사는 담담히 적고 있었다. 따뜻한 샌프란시스코의 동물보호소로 갈 거라고 했는데, 잘 갔을까. 그러고보니, 서울동물원에도 이사 가야 할 동물들이 많았다. 고래의 조상이었을 코뿔소도.


이 추운, 빙하기의 끝머리에 동물원에 간 이유는 바로 동물원에서 하루 두세 차례 보여주는 '돌고래 쇼' 때문이었다. 준비하고 있는 책에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사진 디비를 확보해야 했다. 방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캐논1D에 70-200을 끼어 들고 갔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으니, 예술적 열정(!)이 다시 불탔지만, 곧잘 방전되는 밧데리 때문에 아껴 찍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너무 추워서 동물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돌고래 쇼가 열리는 공연장은, 동물원에서 가장 따뜻했다.


돌고래 쇼를 공연하는 놈들은 '큰 돌고래'다. 짧은 한 마디였으나, 다행히도 사회자는  "오늘의 주인공은 큰 돌고래"라고 알려줬다. 보통 동물공연장에서는 동물의 정확한 종이나 생태적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게 알려주는 순간, 동물 공연의 '동화' 속에서 몰입하던 관람객이 '현실'로 튕겨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과 같다. 우리는 대부분 '물개 쇼'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물개가 아니라 바다사자인 경우가 태반이다. 동물원은 굳이 '바다사자 쇼'라고, 이 바다사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서식하는 '스텔라 바다사자'라고, 떼를 이루어 살며 계절마다 이동한다고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순간, 관람객은 이들이 원래 자연 속에 존재해야 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큰돌고래는, 병코돌고래(Bottlenose dolphin)라고도 불린다. 돌고래를 물고기로 알았던 시절에는, 카우 피쉬(cow fish)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이기도 했다. 큰돌고래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하곤 세계 전역에 서식하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돌고래다. 배를 타고 가다보면, 선두와 선미에서 강아지처럼 퐁당퐁당 뛰어오르곤 하는 애들이 이들이다. 그리고 전세계 동물공연에 가장 많이 동원되는 이들이 바로 큰돌고래이기도 하다.



얼마 전 영화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보고나서는, 동물원과 수족관에 갇혀 사는 돌고래를 보는 게 더 불편해졌다. 타이지 해안에 큰돌고래떼가 찾아오면, 어민들은 수십 척의 배를 타고 나가 돌고래떼 근처에 쇠파이프를 바다에 넣고 '땡땡땡' 친다. 고래는 음파로 통신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처음 들어본 소리에 안절부절 못한다. 어민들은 음파에 교란된 수십 마리의 돌고래들을 좁은 만으로 몰기 시작한다. 내몰린 돌고래들은 그물에 걸려 꼼짝하지 못한다. 그리고 더 코브의 바다는 선홍빛으로 변한다. 괜찮은 고래들은 그물에서 건져져 일종의 '양식장'으로 옮겨진다. 이 고래들은 미국의 플로리다를 비롯해 전국의 워터파크로 수출된다. 

워터파크에서 일하는 돌고래들이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 라는 건 부질 없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프리윌리>의 스타 범고래 '케이코'는 어릴 적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잡혀와 멕시코와 미국의 워터파크를 떠돌았다. 하지만 영화로 인해 케이코는 유명해졌고,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케이코의 석방 운동을 벌였다. 케이코를 자연에 돌려주자고. 워터파크는 결국 케이코를 풀어줬다. 어쩌면 그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더이상 어린 돌고래를 포획해 워터파크에서 고된 노동을 시키는 게 윤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보여준 것이었으니까.

케이코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고향인 아이슬란드 해안으로 돌아가 야생 적응 훈련을 했다. 훈련은 순조롭지 않았던 것 같다. 케이코는 인간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케이코는 아이슬란드에서 노르웨이까지 먼 여정을 완수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1년 뒤 케이코는 급성 폐렴에 걸렸다. 식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졌다. 마지막 날, 케이코는 사람을 찾아 육지로 헤엄쳤고, 노르웨이의 해안가에서 좌초해 숨졌다.





덧글

  • 93학번 2010/09/19 23:56 # 삭제 답글

    슬프네요. 익숙해졌다면, 그냥 살아도 좋았을 것을.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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