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 다이어리 airport



무국적성, 경계, 지상과 하늘, 삶과 죽음, 승천 등은 공항이 표상하는 이분적인 이미지에 기대있다. 알랭 드 보통은 내가 보안검색대 앞에서 겪었던 모종의 공포감을 핀셋으로 꼭 집어 이렇게, 해부대 위에 올려놓았다. 

스캐너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다 보면 많은 사람이 혹시 내가 집에서 나설 때 가방에 폭파장치를 감추어 온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몇 달 동안 테러리스트 훈련과정을 밟은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레인은 <질투와 감사>에서 이런 잠재적인 죄책감은 인간 본성에 본래 내재하는 부분으로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기원은 부모 가운데 자신과 동성인 존재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살해 욕망이라고 말했다. 

보안검색대를 무사 통과하면, 죄인이 우글거리는 바벨의 도시를 빠져나와 신성의 도시에 진입한 느낌이 든다. 보안검색대 이전과 이후의 공간은 확연히 대별된다. 그건 최후의 심판과도 같다. 보안검색요원은 생명책 대신 엑스레인 게이트 앞에서 스캐너를 들고 나의 과거를 검사하기 시작한다. 보안검색대를 넘어서야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환승구역에서 나는 무국적자가 되고, 출발지도 목적지도 아닌 경계를 소요할 수 있게 된다. JFK <터미널>에서 빅터 나보스키가 비록 빈한하게 살았을지라도, 경계에서 버텼기 때문에 그는 결국 바벨의 죄인들로부터 돌로 쳐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다른 공항은 삶과 죽음을 표상한다. 공항이라는 경계공간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이 나누어진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떠오르는 행위는 죽음에 대한 무릎씀, 다른 세상으로 이동, 일종의 승천을 상징한다. 환승구역을 탐사하고 난 뒤, 알렝 드 보통은 말한다.

며칠 동안 여러 상점에 자주 들러보고 나서야 나는 공항에서 소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무엇에 불만을 품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문제의 중심에는 쇼핑과 비행 사이의 불일치가 있으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 앞에서 존엄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되어 있었다...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체를 앞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보내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알렝 드 보통이 히드로공항 터미널5에 틀어박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지난해 영국에서였다. 보통씨가 히드로공항에 있을 적, 나도 참 뻔질나게 히드로를 드나들었다. 터미널 1, 3, 4 에 가보았으나, 환승구역은 번쩍거리는 푸드코트, 쇼핑몰과 이곳을 가득메운 군중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모두 어지러웠다. 보통이 소요했던 터미널5는 좀 한가했을까.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 답게, 몇 달 만에 한국에 번역본이 나왔고, 서점에 간 김에 거금 1만2천원을 주고 (사기엔 두께가 얇았지만, 그래도 히드로와 나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으므로) 사서 이틀만에 읽었다.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자꾸 서울에 가는 보잉777을 언급하곤 하는데, 헛 참, 아시아나는 터미널4에 주기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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