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seoul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 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이 이런 말을 했단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인용된 글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곰곰이 '기억'에 대해 탐구했다. 뭐, 탐구는커녕 그냥 생각해본 것이지만.
아마도 영화 <솔라리스>를 본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닐라스카이>도 그랬다.
이 영화들은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이야말로 당신의 주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인생의 한 부분의 기억을 없앤다면, 혹은 가상 기억을 주입시킨다면(바닐라스카이에서는 예지몽으로 나타난다), 불행한 당신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 아닌가.

'신파조의 기억'이란 이런 것이다. 기억과 감정이 격하게 붙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정은 기억의 토대 위에서 작용하니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룹 넬은 기억에 대해 노래를 부른 게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기억을 걷는 시간'.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땀을 스치는 어느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곳에 네가 있어
그대 어떤가요 그대 어떤가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가 나온다. 환자는 1945년 이후 기억이 정지돼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달에 간 줄도 모른다. 1945년 이후, 현재의 기억은 얼마 가지 못해 사라진다. 그런데 망각은 최근의 시간부터 차례로 일어난다고 한다. 말하자면 역행성 기억상실증.

사실 그렇다. 근래의 기억일수록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다. 감정이 짙게 드리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기억은 윤색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최근에 일어난 일의 기억은 지독하게 혼란스럽다. 근래에 일어난 일부터 가장 먼저 잊어버리고 만다. 반면에 예전의 일은 별 문제 없이 기억할 수 있다. 환자의 지성이나 두뇌 기능, 능력 등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번째. 아까 말했듯 기억이 모여 주체성을 이룬다. 당신이 기억하는 과거가 당신의 주체성을 이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과 같은 '기억위원회'가 생겼다.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망각을 강요당했던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잊혀진 제주 4.3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우리 그 이야기를 듣고 4.3을 기억했거나 4.3의 다른 측면을 기억해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인명사전을 펴낸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만을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옛 것은 잊어버리고 미래만을 생각하자, 이거다. 한나라당 족속이 보통 그러한데, 실제로 사람을 만나보면 자신의 걸어온 길을 뒤밟아보거나 아예 그런 감상에 잠기는 일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이라면 긴 하루를 마치고 어두운 방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적어도 10분은 뒤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인간의 삭막한 기억의 시냇물에 영혼이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다.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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