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을 기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쓴다. 우리는 바탐섬에 도착했다. 긴 포치가 해안 절벽에 있는 우리의 방으로 인도했다. 첫날, 비행기의 건조한 공기가 침입해 나는 독한 감기에 걸려 있었다. 9시도 되기 전에 곯아 떨어진 덕택에 나는 이튿날 아침을 가뿐하게 맞이했다.

아침 식사는 인도네시아풍의 짠 베이컨과 마른 과일들이었다. 그날 우리에게는 아무 계획도 아무 할 일도 없었다. 주어진 것은 아담한 해변과 소박한 풀장과 원두막이다. 나는 원두막에 드러누워 헤드폰으로 므이 카프리스(Moi Caprice)의 음악을 듣는다. 그 기묘하게 쉼표가 없이 계속되는 음악에 의식을 집중한다. 첫 번째 배터리가 <더 선 앤 더 사일런스 The Sun and the Silence> 도중에 끊긴다. 음악은 물에 쓸려 흐르는 모래 속에 삼켜져버리듯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인간종말 리포트>(원제 Oryx and Craig)가 속도감 있게 읽힌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빈 해먹이 거린다. 앞에는 싱가포르 해협이 펼쳐져 있다. 바다에는 입항을 기다리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이 떠 있다. 휴양지의 바다에서 조망되는 공룡같은 기계들은, <미래소년 코난>의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킨다.
"저 배들,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을 잘도 피해 왔을까?"
하늘에선 창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들이 지나간다. 최멍은 튜브에 바람을 몰아넣고 가뿐 숨을 쉰다. 결혼하고나서 첫 휴가, 보라카이에서 2천원을 주고 산 튜브다. 타이어가 그려진 튜브를 탄 최멍이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친다. 다시 책을 읽고 피자 한 조각을 먹고 다시 음악을 듣고 콜라 한 잔을 마신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공기가 신비로운 색깔로 물들어간다.
"여기 적도 맞아? 춥다, 추워."
우리는 수건을 이불처럼 덮는다. 최멍이 나침반을 켠다. 북위 1도11분44초, 적도 맞다.


바람은 밤을 데려왔다. 우리는 다시 바닷가에 나선다. 플라네타륨에도 이렇게 많은 별은 없었다. 몇 개의 별은 굉장히 크게 생생하게 보인다. 진짜로 손을 뻗으면 그대로 닿을 것만 같다. 최멍은 오리온 자리를 보여주었다. 파란 베텔기우스와 붉은 리겔이 가장 빛난다. 처음 만나는 별이다. 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