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구, 20년



하나. '질문하는 영화'와 '대답하는 영화'가 있다. 전자는 열린 세계이며, 후자는 닫힌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질문하는 기사'와 '대답하는 기사'가 있다. 어떤 이는 하나의 기사가 문제의 제기부터 해결 그리고 대안까지 완결된 해답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의 불완전성, 편견, 짧은 능력에 비추어 그건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둘. 나는 요즈음 사람들을 (혼자 재미로) 두 유형으로 분류하곤 하는데, 그것인즉슨 '회의형 인간'과 '확신형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회의형 기사'와 '확신형 기사'가 있다. 나는 점점 더 '회의형 인간'이 되어간다, '회의형 기자'가 되어간다. 자신이 없다. 확신에 차 말하는 게 두렵다. 점점 더 많은 주장들이 소음처럼 들린다. 기자 생활을 15년이나 해서 그런지, '확신형 기사'보다 '회의형 기사'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물론 대중적 측면에서는 회의형 기사보다는 확신형 기사가 열광을 부른다. 요즈음처럼 첨예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셋. 언론학 교과서에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적어도 정통 언론의 문법에서는 특수가 보편을 선행한다. 그런데 난 요즈음에 보편에 더 관심이 많다. 보편적인 삶의 무늬와 사회 구조와의 상관관계 같은 것들, 우리가 부인하나 세월 속에서 확인하는 것들, 그러니까 특수를 잡아먹는 보편법칙 같은 것 말이다.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는 그런 점에서 아주 비관적인 영화였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어둡고 답답한 결말을 내고는 끝나버리는데, 영화의 비관적인 예언은 이듬해 IMF 체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이태백, 88만원 세대의 출현 등으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가령 임순례 감독은 이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현성이(무소속)가 시장의 아주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잖아요. 이 상황이 빠른 시일 안에 개선되진 않을 것이고 세 친구도 굉장히 어두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이었죠. 20년이 지났는데, 영화가 얘기한 것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악화됐어요. 양극화는 심화됐고 폭력은 양상을 달리해 심해졌고, 세 친구를 둘러싼 세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죠."

한두 달 전엔가 임순례 감독이 <세친구>의 세 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영화의 특이했던 세 주인공 이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무소속, 섬세, 삼겹. 나와 같은 20대 초반이었고, 그 나이 때 나도 이 영화를 봤다. 이제 마흔 즈음이 되어간다. 인생의 동지들이여, 당신들은 20년을 어떻게 살았소? 임순례 감독에게 부탁했고, 임 감독이 연락해 다시 자리를 마련했다. 감독과 세 친구는 지난 번의 만남이 부족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웃고 떠들었다. 그러니까, 보편의 섬세한 무늬를 나누는 자리였다. 물론 세상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평범하게 살았다. 그 어떤 특수도 없었다. 각자 삶에 대해 질문하며 살았으나 뚜렷한 대답은 얻지 못했다. 세 친구 모두들 그랬다. 냉정하게 보면 세상은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는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웬지 모르게 뭉클한 대화를 글로 옮긴다는 게 이처럼 부질없게 느껴진 적은 없었을 정도였다. 동영상을 찍어보려 했으나, 내 스마트폰이 녹음 중이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러 다녔다. 뭐, 사진 찍고 조금 이야기하다 헤어진 거지만, 그래도 무소속이 만든 음악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듣고, 섬세가 만든 옷도 사입었다. 기사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친구 봤냐'고 묻고 다녔는데, 다들 정웅인, 윤다훈 나오는 시트콤 <세 친구> 얘기를 하더라. 그 전에 영화 <세친구>가 있었다. 영화 <세친구>가 좀더 깊고 예리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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